항상 팩트가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도 괜찮은 무대였다고 할까 여러가지 분야가 있지만 이곳에서는 세가지를 주로 다루려한다 노래 연극 요리 그리고 무술이다
먼저 노래부터 다루려하는데 항상 좋은 무대 괜찮은무대는 어떤걸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매번 무대에 서지만은 적어도 이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나이고 나는 이 역활을 소화핸야 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귀가 청력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들보다 괜찮았다 이 무대를 어떻게 하면 소화할수 있을까 그게 항상 문제였었다 음악의 신을 빙의하는거 그건 참 괜찮았다 그 룰라의 누구더라 아는형님 나오는 옛날 이성진 씨였던가 그분께서 질문을 받으셨는데 이성진 룰라의 멤버였던 분께 질문이 갔었는데 만약 기획사 사장이고 멤버를 뽑을때에 무얼 가장 볼것 같으냐 라는 질문에 자기는 음색을 가장 중점적으로 볼것 같다고 하였다 또 옛날 음악프로에서 어떤 가수로 기억하는데 백지영이었던것 같았다 정화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그당시에 듣기로 어떤 사람은 이 음색을 갖기위해 담배를 일부러 피기도 하고 수십년을 갈아넣기도 한다고 했다 어쨌든 나는 신을 실어서 노래를 불렀다 나만의 방법이기는 한데 가사에 집중을 하는거다 그 가사에 있는 사연을 이해하고 그 사연에 맞는 노래를 일부러 거의 막 몇억년 이상되는 어떤 문명의 신위의 신 이렇게 있는 어떤 그곳의 가수를 몸에 싣는다 그리고 이 감성을가지고 같이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부르지는 않는다 그 당시에 가수로서 마이크를 잡은 이상 그에 해당하는 도덕성이 있다 일단 무대의 퀄리티가 모든걸 다 이야기한다 그 무대의 퀄리티에 따라서 동료아티스트들도 세계정상급 소리를 들을수도 있는거고 관계자인 매니저나 이런 사람들도 돈이 오고가는 현장에 있을수 있는거고 어쩌면 그 돈의 액수가 제법 괜찮으면 아티스트들에게도 조금 올수도 있는 거지만은 그래도 아티스트들에게까지 올정도면 지역구나 혹은 인근 지역에서 어느정도 되는 수준이어야한다 내가 말하는 지역은 시, 도 단위라고 하자 그외 읍면구 정도는 동네라고 생각해도 될것 같다 그게 시, 도 에서 손에 꼽히는 정도이면 아티스트들에게도 돈이 온다고 생각한다 무대의 퀄리티가 전부이다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게 전부인데.. 그러면 어떨때 감동을 받는가.. 2편에 계속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공감 때문이다. 처음에는 음악이 주는 자극의 강도, 즉 자극의 순위가 감동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말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시대가 지나고 장르가 바뀌어도 음악적 테크닉은 언제나 자극의 순위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음악은 단순히 난이도와 테크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진화하며, 때로는 웃음과 풍자까지 품어낸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한때 크게 유행했던 밈들이 있다. 특정 인물을 소재로 한 강한 표현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밈처럼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그것을 농담처럼 소비했다. 누군가 “너 싸움 잘하니?”라고 던지면, 곧바로 밈을 인용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식이었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사회적 풍자와 집단적 놀이의 일환이었다. 음악의 테크닉이 진화하듯, 언어와 밈도 진화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문화적 리듬을 발견한다.
밈은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 문자 메시지로 돌려보내거나, 공연 무대에서 개그 요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강한 표현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풍자적 놀이로 받아들였다. 마치 EDM의 비트가 반복되며 청중을 몰입시키듯, 밈의 반복은 사회적 리듬을 만들어냈다. 이 리듬은 때로는 과격했지만, 동시에 웃음을 주고,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음악의 주요 요소는 **한(恨)**이라는 감정이다. 한국적 정서 속에서 한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희망이 뒤섞인 복합적 감정이다. 밈과 풍자적 표현은 이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사람들은 웃음을 통해 슬픔을 해소하고, 풍자를 통해 분노를 표출한다. 그 과정에서 목소리는 더욱 구성지고, 엔터테이너적 기질은 강화된다. 마치 득음을 한 듯한 목소리를 얻는 것처럼, 풍자와 개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정의 통로를 열어준다.
이런 맥락에서 개그 EDM이라는 장르가 등장했다. EDM의 강렬한 비트와 개그적 요소가 결합된 이 장르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 문화적 풍자와 놀이의 장이 되었다. 무대 위에서 “갤갤갤” 같은 의성어를 반복하며 관객을 웃게 만드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사회적 리듬의 재현이다. 개그 EDM은 음악성과 유머를 동시에 추구하며, 새로운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국에는 UV라는 팀이 있다. 유세윤과 뮤지션이 함께 만든 이 팀은 개그 EDM의 대표격으로 존재한다. 그들의 음악은 단순히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풍자를 담아낸다. EDM의 비트 위에 개그적 가사를 얹어, 관객은 웃음과 몰입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는 음악의 퀄리티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이며, 장르의 개척이다. 장기하가 말했듯, 앞으로는 개그 EDM이 트렌드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문화적 흐름이다.
물론 이런 장르가 모두에게 웃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게 왜 웃기지 않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웃음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어떤 이에게는 단순한 농담이, 다른 이에게는 사회적 풍자가 된다. 중요한 것은 음악과 개그가 결합해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개그 EDM의 힘이다.
결국 음악은 진화한다. 클래식에서 록으로, 록에서 힙합으로, 힙합에서 EDM으로, 그리고 이제 EDM에서 개그 EDM으로. 이 흐름은 단순한 장르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감정의 진화다.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웃고, 울고, 분노하고,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무대 위에서 하나의 리듬으로 합쳐진다.
앞으로의 시대는 개그 EDM으로 먹고사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히 웃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고, 사회적 풍자를 통해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음악의 퀄리티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 그 시도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장르를 발견하고, 새로운 감정을 경험한다.
이 글이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개그 EDM은 새로운 트렌드다. 그것은 음악적 테크닉과 사회적 풍자가 결합된 장르이며, 앞으로 더 많은 무대에서 사람들을 웃기고 감동시킬 것이다. 음악은 언제나 진화한다. 그리고 지금, 그 진화의 최전선에는 개그 EDM이 있다.
연극 역시 덕이 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무대의 퀄리티에 따라서 관계자도 돈이 들어올수 있고 아티스트 역시 팬덤을 얻게 된다 혹은 퀄리티가 지역구 이상이 되거나 한다면 시, 도 광역단체 탑급 정도가 된다면 관계자에게 들어온돈이 분배 되어서 아티스트들에게도 갈 수도 있다
어쨌든 무대의 퀄리티가 중요하다 그 퀄리티를 갖추기 위해 각자마다 방법이 있다 메소드 연기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나는 최대한 캐릭터에 몰입한 후에 그러한 영혼을 실어서 극을 풀어간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건데 말하듯이 혹은 겪은 것을 하듯이 이런건 말이 안되는 것이다
어쨌든 무대의 퀄리티가 중요하다 그 퀄리티를 갖추기 위해 각자마다 방법이 있다 메소드 연기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나는 최대한 캐릭터에 몰입한 후에 그러한 영혼을 실어서 극을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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