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일단 처음으로 탄핵된 대통령이 되셨었지만 그분은 인권변호사 였었고 불의에 항거하고 국민들이 조금은 먹고살만하다 조금은 살아볼만하다 좀 사람사는 세상 여기 사람사는세상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 님이시다 당시의 국회는 법률 가결권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계엄권 역시 미국의 승인만 떨어진다면 언제고 시행될수 있는 상황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에게는 그런 시나리오가 있었을까 잘은 모른다 그렇지만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기존의 선대 대통령님들과 다르게 국민단합이 달성된 입법부와 행정처가 계엄권과 법률가결권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상황에 그것도 다수당이 아니셨다 언제고 국회에서 법률을 가결하면 사법부에서 시행하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당시 상황이 조금 단순하게 볼수 없었던 것이 미국이 9.11 테러를 당하고 나서 극우이슬람 세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 등이 있는 동아시아 몇몇 이슬람 극우단체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고 동아시아 세력을 스스로의 독자적 행적으로 치부하는게 아니라 직접적인 개입 단계를 생각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게 9.11 미국테러 사건 이후 움직임이었다 일단 노무현 대통령님의 몇가지 근거를 이유로 탄핵안 소추안을 발의하고 다수당이었던 상대 당대표 쪽에서 가결을 한다 법률 가결이 되었지만 노무현 대통령님은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으셨다 국민도 당해야 했지만 미국에서 결정내는 쪽으로 기우는 것도 맞지만 그리고 이전세대에서 계엄령이 그대로 진행될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간섭이 거의 잘 없었던 것도 여러가지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긴했지만 그렇지만 대통령님은 민주주의운동권에 계시던 분이셨다 사실 계엄령이라는게 대통령 고유권한이지만 비록 온 국민의 단합을 상대로 군대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실제 존재하는 경우이지만 대통령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노무현 대통령님께서는 법무부의 사법절차를 따르셨고 법원에서 최후진술을 하셨다 역대 대통령중에서 처음으로 탄핵가결이 되셨지만 법무부에서는 기각 을 시키고 탄핵안을 반려하였다 사실 미국은 그당시 국민정서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였고 그만큼 문화 군사 경제 모든것에서 세계를 압도하는 세계의 경찰이었다 그 밑바탕에는 세계를 압도하는 압도적인 국민정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십대부터 40대 50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민의 의식수준은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하였다 지구 기준이지만 그러하였다 미국은 컴퓨터 수준으로도 이미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일은 상당히 불가능했으며 컴퓨터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가장먼저 대통령계엄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를 건립한 국가이다 그만큼 여성의 권리도 상당히 존중받는 다른국가보다 국민수준이 월등한 나라였다 그런 상황에 민주국가 미국에서 컴퓨터 까지 나오고 모든 정보가 중앙관리청 서버에 기록되는 상황에 전화선을 끊고 언론사를 통제하고 지역을 탱크와 총으로.. 밀어버린다는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모든 국민과 맞서야 하였으며 심지어 국민 전체는 집에 여러종류의 총을 구비하고 있는 국가이다 불가능했다.. 미국은 컴퓨터의 등장으로 독재는 완전히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종지부가 찍힌 셈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기존의 여성지위의 그런대로의 보장에서 이제는 압도적인 여성의 지위의 상향을 목도하게 되었다 남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입장이 되었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미국을 필두로 비슷한 민족성을 가진 유럽 국가들이 동참하게 되었다 미국과 유럽은 동맹체제로 있는 국가들이다 물론 미국이 국민성이 갖춰지지 않았을 경우에 계엄권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남북전쟁이 대표적인 일례이다 하나의 미국으로 있을 적에 아브라함 링컨이 국회에서 과반수이상의 득표를 모아서 국회에서 흑인노예해방을 가결시켜버린다 그런데 당시 흑인노예해방을 반대하는 세력은 군부를 일으켜서 군대로 대중의 투표를 밀어버리려고 했다 그게 그 유명한 남북전쟁 이다 국민은 반발할수 없었고 언론사는 통제가 되었으며 사실상 국민의 단결투쟁결단 이런것들이 상실된 저널리즘은 그저 종이낯장에 불과한 것이다 남북전쟁은 일어났고 그 결과 흑인노예해방을 가결시켰던 남부의 승리로 결국 흑인은 노예신분에서 자유인 신분으로 전부 해방되는 사건이 생긴다 이것이 아브라함 링컨의 업적이다 그리고 이 당시에 국민이 시민의식이 강했다면 전쟁이 나기전에 계엄권을 내세우기전에 이당시 그 무어라 칭했어도 계엄권의 다른 명칭이 있다하더라도 그걸 내세우기 전에 국민이 앞장서서 막았을 것이다 북부가 사실 원래대로라면 전국민의 반발을 직면해야 하는게 아름다운나라 미국 미국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전개이지만은 북부에서는 전쟁의 서막이 오르고… 남부와 결전에 이르르게 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님 당시에 미국이 동아시아 정세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계속 보이던 시기였다 컴퓨터도 생겼고 남성 중심으로 한국사회가 단합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컴퓨터에 업로드하면 언제고 볼수있던 신문기사들 그중에서도 언론인으로서의 저널리즘을 가진 유능한 젊은 언론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노무현대통령님은 민주화 운동인사로서 비록 사용할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계엄권을 선대 대통령님들 처럼… 사용하지 않으셨고 그저 묵묵히 입법부의 결정을 따르셨다 입법부 국회는 국민이 지역을 대표하라고 의원으로 뽑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다수당이 되면 법안 가결을 실행할수 있다 그렇게 처음 탄핵 가결이 되었고 미국승인만떨어진다면 계엄권은 아직 살아있다볼수있다 아직도 국회도 행정부도 어느곳도 서로가 승자라 볼수 없는 삼권분립의 시대였다 컴퓨터의 SNS 매체들이 서서히 등장을 알리고 있었지만 어느하나 선뜻 누가 승자라 이야기할수 없는 부분이었다 법무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탄핵 소추안을 기각을 하였다 반려시켰고 돌려보내셨다 아마 잘은 모르지만 그 당시의 국민단합은 사실상 이러하다 직장이 끝나고.. 집으로 일단 와야한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야한다 그곳에는 언론인들이 올려놓은 기사들이 있다 그 기사를 읽으면 그게 하루에 기사 3~4개 정도가 저널리즘을 지키는 보루였다 당시에는 그랬다 컴퓨터를 중심으로 기사 3~4개 정도의 효율 하루 그 시간만은 우리 국민의 단합이었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보루였다 그렇다 이게 그당시의 저널리즘이었다 무어라 할수는 없지만 아마 사법부에서도 여러가지 가결된 법안및 취조를 하면서 아직 살아있고 미국의 승인하에 승인되어질수 있는 중앙행정부의 권한 같은 것들을 무서워했던것 같다 한치 앞도 내다볼수 없는 일이고 이후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가까스로 삼권분립이라는 형태의 계엄권의 저지가 생겨났었지만 비록 직장을 다녀오고 컴퓨터앞에 앉아서 뉴스기사 3~4개 정도 읽는것이 현재를 지탱하는 계엄권저지의 최후보루이지만은 비록 이 짧은 30분내지 1시간이 한국의 민중을 지키는 시간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미국이 갑자기 승인할수도 있고 국민들이 단합하기에는 매체도 연약하고 시간도 짧았다 하루 30분이 지나면 다음날 회사에서 나누는 담소 정도가 고작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 언론인들도 목숨을 내걸고 기사를 써야하였다 언제 전두환 때처럼 지역하나를 밀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SNS라는 유투브 페이스북 이런것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렇지만 민중의 단합을 야기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했다 그런 중이었다 그리고 대통령님의 탄핵소추안은 기각되고 반려되어 돌려보내진다 그렇게 첫번째 탄핵소추안 안에서 보인건 눈에 띄게 하루 30분이라는 단합이 만들어낸 국민주권의 신장이라는 것이었다 국민은 강해졌다 그게 약간의 그냥 이전정부에대한 보복심리 같은 객기같더라도 대통령을 상대로 국민이 이겼다 이런 어떤 반항하지않은 국가통치자를 상대로 국민이 자신들의 단합심을 한껏 높히던 그런 시기였다 어쨌든 처음으로 계엄권이 국민 단합 앞에 패한 날이었다 행정부의 위상은 예전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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